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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 꿈

무술 2007. 11. 6. 13:17

한동안 인터넷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어느 독일인의 글 중에
한민족은 일본인들을 게으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시기 난개발식 압축 근대화의 흔적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성실함에서 비롯된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지나치게 빠르고, 과도할 만큼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2007년 한국사회가 스스로의 속도와 무게감에 짓눌려
물질적, 정신적 과로사 위기에 처해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1884년 영국에서는 점진적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페비안협회(Fabian Society)를 창설하였습니다.
이 협회의 명칭 페비안(Fabian)은 카르타고 전쟁 시 한니발의 대군에 맞서 특유의
지연전술로 승리를 이끌어낸 로마의 장군 파비우스(Fabiu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시민들은 파비우스를 느림보라 비웃으며, 조급한 마음으로 몇 차례에 걸쳐
한니발과의 전면전을 불사한 끝에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됩니다.
결국, 로마는 파비우스의 끊임없는 지구전에 힘입어
한니발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파비우스의 전술은 영국의 점진적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페비안협회의 이념으로 수용되었습니다.
그 이념은 바로 서두르지 않되, 쉼 없이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니발에 대항해서 싸웠을 때 로마시민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파비우스가 취했던 행동과 같이, 우리도 호기가 올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온다면 전력을 기울여 격렬히 싸워야 한다.” (Frank Podmore)

이 협회의 로고는 거북이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거북이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주’입니다.
서두르지 않되, 쉼 없이 함께 걸어가는 ‘과로사 없는’ 거북이의 꿈을 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