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땅이름

무술 2007. 9. 10. 16:56
땅이름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몇 년전 삼성전자는 땅이름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기도 용인시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자리한 '기흥(器興)읍'의 지명을 '구흥(驅興)구'로 바꿀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삼성전자 측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기흥이란 지명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확고한 의지(?)를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이 '그릇이 흥한다'라는 뜻의 기흥 지명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는 '정보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그릇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릇으로 상용되는 도자기와 반도체는 원료(흙과 세라믹)가 같습니다. 기흥에서 반도체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은 땅이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생각이지요. 결국 용인시는 기흥의 지명을 바꾸지 않기로 했고, 이 일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최첨단 IT 제품을 생산하는 초일류기업 삼성전자가 땅이름과 풍수지리를 따진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하지만 땅이름이나 풍수에 관한 이런 믿음들이 단순한 미신이나 징크스일까요?


땅이름의 글자 뜻과 현실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땅이름의 우합(遇合 : ‘우연히 들어맞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불러오고 있는 땅이름이 후세에 와서 이상하게도 그 땅이름의 뜻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이지요. 댐건설이나 공업단지 조성, 또는 신도시 개발 등의 과정에서 예로부터 불려오는 땅이름이 실제의 상황과 일치되는 예언성 땅이름이 굉장히 많습니다.


충북 보은군 회남면에 어부동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본래 호수가 없고 농사를 짓는 산골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청댐이 생긴 뒤, 마을 앞에까지 물이 차게 되었습니다. 고기잡이하는 내수면 어업이 이 마을의 주 생업이 되었으니, 어부가 사는 곳이란 땅이름과 현실이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청주 신공항은 2000년대를 대비한 중부권 거점공항입니다(얼마전 신문에 청주공항을 이용하면 인천공항에 비해 비용을 약 30%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비행장이 자리잡은 지역인 충북 청원군 북일면에는 ‘비상리‘, 청주시 강서동에 ‘비하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일대는 원래 인근 문필봉·삼두봉 등의 산 형세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닮았다 하여 비홍리라고 부른 곳입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 끝에 있는 마을 이름이 ‘비하리(飛下里)‘이고, 이륙하는 쪽 동네 이름이 ‘비상리(飛上里)‘입니다. 항공기가 바람을 안고 이착륙을 해야 하는 방향까지도 정확히 내다본 듯한 이름, 북일·북이면 일대 수백만 평에 펼쳐지는 대활주로는 비상리와 비하리를 축으로 길게 뻗쳐 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위치와 땅이름이 참으로 신통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의 옛이름은 '제비섬'이었는데 조선조 중기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제비는 비행기, '영종(永宗)'은 긴 마루라는 뜻으로 광활하게 뻗는 활주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섬과 방파제로 이어진 용유도(龍流島)는 용이 구름을 뚫고 하늘에서 논다는 뜻이고, 근처의 섬 ‘응도(鷹島)‘는 ‘매섬‘이라 불렸던 곳으로 비행기를 용과 매로 보았던 것이 아닌지. 섬 안 운중동의 ‘잔자리‘ 마을은 ‘잠자리‘를 뜻하는 것 같고, 섬 안 운서동의 쇠파리 마을 등. 이곳에 날틀(항공기)들이 부지런히 뜨고 앉을 것을 땅이름들이 너무도 잘 알려줘 왔습니다.



또한 온천지역에는 온천·온정·온양 등 '온(溫)'자가 들어간 땅이름이 많습니다. 그래서 온천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먼저 땅이름을 검토한 후, '온'자가 들어간 지역을 우선적으로 조사하여 개발을 시작하는 예가 많다고 합니다.

미래의 모습을 정확히 예견하고 땅이름을 지은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우합현상은 굉장히 많습니다. 또 이런 우합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와 지관들도 상당수 있다합니다. 이렇게 볼때 우연히 합한다는 우합이란 말보다는, 훗날 반드시 땅이름대로 된다는 후합後合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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